
[월간 낭만경주]를 시작하다
몇 년간 간간이 지인들이 요청이 있을 때, 혹은 <낭만경주> 책을 읽고 좋았다며 여행을 청해준 분들이 있을 때 한번씩 해보았던 경주 여행을 올해부터는 좀 정례화해보려고 합니다. 몇 년 사이에 저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갖추어서 외국인 가이드에 문제가 없고,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베테랑 가이드들도 협력하고 있고, 좋은 숙소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지역 내 네트워크도 본격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추어져서 이제부터는 원활하게 여행을 만들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월간 낭만경주]. 기본 개념은 한 달에 한번은 특별한 경주를 소개하는 여행을 만든다, 그리고 그 여행은 ‘다정한 여행’이 되고 싶다, 입니다. 경주는 국내의 대표적 관광지라서 이미 가볼 곳, 먹을 것이 식상할 정도로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여행을 많이 해 본 분일 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경주는 최소 신라 1,000년, 통털어서 들여다 보면 2,000년 정도 역사의 두께가 쌓인 곳입니다. 파고들면 놀랄만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이 엄청나게 많은 곳입니다. 하루 이틀 일정으로는 인파에 휩싸여, 경치만 보고 쓱 지나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작정하고 다른 방식의 여행을 시도하지 않으면, 관광지의 중력장을 거스르는 밀도 있는 여행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월간 낭만경주]는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키는 관광보다, ‘특정 소수’와 취향을 공유하며 로컬로 딮 다이브(deep dive)하는 여행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향유하되 최소 비용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그간 지인들을 위한 여행을 주로 기획하다 보니, 굳이 비싼 곳 찾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맛집과 즐거운 이벤트를 만들어 볼 수 있었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굳이 낭비하지 않도록 기획을 해보자는 생각입니다.
자,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 4월호 여행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소개합니다.
프리-서비스
원래 점심무렵부터 일정이 시작인데, 수십 년만에 경주 여행 오시는 두 분이 아침 일찍 도착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간 경주를 여러 번 다녀갔던 지인께서 자신의 친구 두 분에게 ‘강추, 강추!’를 외쳐서 공지 올라가자 마자 바로 예약을 하셨는데, 문제는 주말에 경주로 오는 교통편. 요즘은 주말에 경주를 오가는 KTX 기차는 몇 주 전부터 거의 매진인 상황입니다. 물론 웨이팅을 걸어놓고 기다리다가 취소 표가 나올 때 잡아채는 방식으로 표를 구하긴 합니다만, 수십 년만에 경주를 오는 분들이 이렇게 하기에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겠지요. 2주 전인데도 표를 못 구해서 동동하는 상황이었고, 저도 고속버스로 오거나 혹은 기차로 중간쯤 와서 누가 카풀을 해줄 수는 없는가 여러 선택지를 배후에서 고민을 해보던 중이었는데, 어쨌든 일 주일 남겨두고 차표를 구했다고 너무 반가운 목소리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당일날 일정 확인차 기차 시간을 물었더니 9:19분이라고 해서 서울 출발이 그 시간인가 했는데, 어허… 경주 도착 시간이 그 시간이라네요? 알고보니, 없는 차표를 찾고 찾아서,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새벽기차표를 구한 것. 집을 나선 시간이 4시인가, 5시인가 그랬답니다. 엄청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경주역으로 픽업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금요일에 미리 도착한 오랜 지인 ‘부산출신 서울사람’ 하 모 선생께서 차량 봉사를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경주역에서 픽업해서 황리단에서 잠시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는 한 분은 그 유명한 ‘황리단 올리브 영’에 떨어뜨려 드리고, 우리는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근처에 아침부터 여는 카페를 찾아나섰습니다. 황리단에 있는 김씨 문중의 사당인 숭혜전 인근에 ‘봄날(Spring Day)’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원래 두 채의 한옥을 개조해서 하나는 카페로, 다른 하나는 헌책방으로 운영하는 곳인데, 최근 헌책방을 조금 줄이고 ‘북 스테이(Book Stay)’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제가 종종 손님들 모시고 가는 곳이라 주인장과도 늘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황리단 중심부에 숙소로 이 정도 비용으로, 이런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이 드뭅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덜 붐비는데, 계속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은밀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 바램을 가져 봅니다. ㅎㅎ


동남산 탐방
경주는 쌈밥집이 꽤 유명했는데, 지금은 주로 관광객 대상 음식점이 되어 있어서 저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물론 아주 부실한 것은 아니라지만, 너무 부산스럽고, 음식이나 서빙이 손님 받아내기 바빠서 아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운전이든, 기차든 경주까지 긴 시간 이동해서 온 사람들에게 첫 식사 메뉴로 ‘마시조은집’에 가서 돌솥밥 정식을 권합니다. 쌈 싸먹는 재료와 기본 반찬이 정갈하고 주인장이 공들인 흔적이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돌솥밥과 숭늉까지 먹고 나면 몸도 풀리고, 마음도 풀리고 경주여행을 시작할 의욕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식후에는 예정대로 동남산 탐방에 나섰습니다. 시작은 우선 ‘고청기념관’입니다. 앞으로도 여행의 시작을 이곳으로 삼을까 합니다. 고청 윤경렬 선생님은 경주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존경받는 어른입니다. 1950년대에 어린이박물관학교를 시작해서 이끌어오셨고, 경주의 남산과 문화유산을 알리는데 평생을 진력한 분입니다. 흰 머리에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시내를 걷는 모습을 저도 어릴 때 뵌 적이 있습니다. 술도 좋아하셔서 1950년대 이래로 경주의 문인, 예술가들과 어울린 술자리 에피소드도 참 많은 분입니다. 그분의 삶을 기려 만든 고청기념관이 동남산 입구 양지마을에 있습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그분의 고택에 잠시 앉아서 망중한을 즐겼습니다.


동남산은 불교의 전래와 신라 불상의 발전상을 이야기하기 매우 좋은 코스입니다. 할매부처-옥룡암-보리사로 이어지는 코스는 거리도 멀지 않고, 압축적으로 신라와 불교와 특별히 석불로 나타난 신라인의 종교성이 남산을 배경으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연대와 복잡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하나의 외래 종교사상이 한 사회에 들어와 뿌리 내리는 과정에 사람들은 무슨 고민과 기대를 거기에 투영하며 살았을까 나눌 이야기는 많지요. 박물관이 아니라, 노천에서 바로 거대한 석불에 다가가 살펴볼 수 있는 특권이 경주만큼 넘쳐나는 곳은 없습니다. 동남산을 쭉 돌고 나오면, 신라 역사와 종교에 대한 이해가 쑥 깊어진 느낌을 다들 받으실 것입니다.


교촌 최부자의 유산
교촌하면 다들 ‘교촌치킨’을 먼저 떠올리는 요즘이지만, 원래 교촌이란 ‘향교가 있는 동네’를 부르는 보통명사 같은 명칭입니다. 교동, 교리, 교촌 등이 다 같은 의미입니다. 향교는 서당 공부를 마친 아이들을 받아서 교육하는 공립 중등교육기관 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경주향교는 역사도 오래 되었고, 전국적으로도 규모와 위상이 큰 향교입니다. 원래 이 자리는 신라의 국학이 있던 위치로 알려져 있어서 여러모로 공부하고, 배우는 곳이란 역사적 상징성이 서린 곳이지요. 향교에 배향된 한국의 ‘동국 18현’ 중에 경주 사람은 신라의 설총, 최치원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인근 영천(과 포항)을 연고지로 둔 정몽주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경주 안강 출신의 회재 이언적이 있습니다. 경주가 의외로 유력한 유학자들이 적지 않게 배출된 지역입니다.
‘경주 최부자’라고 불리는 가문이 있습니다. 흔히 400년간 12대 만석꾼 집안이라고 불리고,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표라고 합니다. 이런 유산을 알리기 위해 ‘최부자 아카데미’란 이름으로 선양회가 활동을 합니다. 저희는 아카데미 강의실을 빌어 ‘경주 최부자의 역사적 유산’에 대해 강의 시간도 갖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단순히 어느 한 부자집의 성공기가 아니라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드문 ‘부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상해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다가 전재산이 소진된 사연이며, 해방 후 교육사업에 전재산을 출연했다가 그것이 재벌과 국가권력에 의해 무책임하게 휘둘린 부분은 한국 역사의 안팎을 다시 되새겨 보게 합니다. 강의는 제가 했는데, 이미 몇 편의 최부자 관련 글을 쓴 바 있고, 현재 최부자 아카데미와 몇 가지 자료연구 및 협력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꾸준히 최부자 관련 글과 연구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숙소는 최부자 아카데미가 운영하는 한옥입니다. 교촌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매력적인 한옥입니다. 문을 열어놓으면 공개된 공간인줄 알고 관광객이 수시로 들어와 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한옥에 들어와 있으면 담 바깥의 분주함과는 완전히 차단되고, 소음마저 들리지 않는 비현실적 아늑함이 있습니다. 전통고택은 아니고 새롭게 지은 한옥인데, 덕분에 냉난방이 잘 되어 있고, 방마다 화장실이 있어 씻고 쉬는 데에 매우 편안했습니다.

저녁에는 ‘최부자 과객체험’에 참여했습니다. 전문 해설사가 간단히 교촌 투어를 시켜주고, 일반관람 시간이 끝나서 외부인이 아무도 없는 최부자 고택을 단독으로 안내 받습니다.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최부자 광에 들어가서는 직접 뒤주에 손을 넣어 쌀을 한 줌 집어서 과거에 과객을 대접할 때 어느 정도 분량의 쌀로 밥을 지어 먹었을까 가늠해 보는 경험도 하고, 다양한 방식의 체험활동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최부자집 안채로 들어가 당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할머니, 안방마님, 며느리가 어떻게 한 세대를 이루며 다음 세대를 맞이했는지, 그때마다 거주하는 방을 어떻게 바꾸며 소위 ‘안방마님이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넘긴다’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최부자 사랑채에서 작은 주안상을 하나씩 받아놓고 앉아서 국악연주자의 음악도 듣고, 최부자집의 ‘교동법주’와 ‘감주’을 맛보았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이렇게 사랑채에서 대접을 했다는데, 한복까지 챙겨입고 앉아서 느껴보는 멋진 풍류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여러 그룹의 여행자들은 저마다 즐겁게 연출한 사진을 찍었고, 청소년들도 매우 신기해 하며 연신 포즈를 취했습니다.


경주의 미식 체험
경주에 왔는데,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핵심 선택지는 다른 곳에서는 먹기 힘든 경주 고유의 식탁을 어떻게 선 보일 것인가 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경주의 막걸리집을 한 곳 메인으로 선택했습니다. 종종 가는 집이라 음식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주었습니다. 모두들 빈틈없이 간이 맞는 나물에 환호했고, 약간은 낯선 해산물(두치 등)에 신기해 했고, 맛있다고 이것저것 시킨 바람에 훌륭한 홍어삼합도 맛을 보았고, 생선구이와 계란말이도 인기가 폭발이었습니다. 낮에 꽤 많이 걸었고, 저녁 식사가 조금 늦어지기는 했으나 시장기 때문만은 아닌 만족도 높은 미식 체험이었습니다. 주전자에 담겨 나온 로컬 막걸리가 너무 달지도, 너무 톡 쏘지도 않아서 안주와 페어링이 아주 좋았습니다. 최부자집 투어를 진행해 준 전문해설사 분도 동석해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막걸리집에서 저녁 겸 한 잔한 다음에는 단골 LP바 ‘아날로그’로 가서 음악을 청해 들었습니다. 우울한 주인장이, 힘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이상한 LP바인데, 잘 열지도 않아서 가기 전에는 꼭 확인을 해야 하는 집입니다. 손님들이 리퀘스트한 음악을 틀어주긴 하지만, 이 집의 강점은 사실 주인장 마음대로 말아주는 ‘오마카세 LP 감상’입니다. 음악 매니아인 주인장은 꽤 희귀한 음반들을 공들여 수집해 놓았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걸 알고 요청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거의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서 늘 우울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종종 비슷한 부류의 음악 매니아들이 초저녁부터 모여서 자기들끼리 음악을 듣고 있는, 그래서 다른 손님들이 굳이 들어올 엄두가 안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인거죠.
이번에는 두 장의 희귀 음반을 들려주었고, 친절하게 음반설명을 프린트해서 준비해주어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때마침 자리한 지역의 프로 기타리스트가 계셨는데, 서로 대화를 섞다가 연주 한번 들려달라고 강권한 끝에, 기타를 잡으셨는데… 아 글쎄, 이 분 연주가 장난이 아니지 뭡니까? 마침 우리 여행팀에 왕년에 대학교 밴드에서 베이스를 친 분도 있었고, 드럼을 친 분도 있어서, 유심히 연주를 듣더니 경이로워했습니다. 안정감 있는 주법과 현란한 테크닉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노래도 유재하, 김현식 류로 흘러가니… 판타스틱했지요.
아침을 못 먹을뻔 하다
해가 일찍 떠서 한 팀은 일찌감치 동네 산책을 나갔는데, 첨성대와 월성과 월정교를 두루 둘러보았다고 합니다. 교촌 한옥의 아침은 한갓진 여유로움이 넘쳐났습니다. 하루 종일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침 8:30에 식사하러 가기로 했기에 짐을 싸들고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아침 식사는 서남산의 남쪽 동네인 내남에 있는, 차로 15분 정도 거리의 유명 맛집인 용산회식당. 아침부터 무슨 횟밥이냐 의아해 하지만, 한번 가본 분들은 이구동성 맛집으로 인정하는 곳입니다. 문제는, 도착해 보니 9시 어간인데도 웨이팅이 한 시간 반. 오전 8:30에 문을 여는데, 주말이면 두 시간 전부터 와서 줄을 선다고 하네요. 주중에는 좀 덜 하겠지만 도저히 기다릴 엄두가 안나서, 오릉 앞 교리김밥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고 이동했습니다.
교리김밥은 계란 지단이 듬뿍 들어간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한 경주의 김밥입니다. 여기도 늘 분주한 곳인데, 그래도 아침 시간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 집은 김밥이 유명하다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집의 잔치국수가 압권이라 생각합니다. 멸치육수 깊이 우려냇 맛에 약간 칼칼함도 있어서, 각자 국수 시키고 김밥을 나눠먹으면 든든한 아침 요기가 가능하고 약간의 해장도 되는 메뉴입니다. 먹고 나니 아침이 든든했습니다.
서남산 탐방
서남산 탐방 일정은 오릉부터 시작했습니다. 신라의 첫번째 왕인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그리고 처음의 몇 왕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전설에는 박혁거세가 죽어서 하늘로 들려올라갔는데, 그 몸이 다섯으로 나눠져서 떨어져서 각각 무덤을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신라 초기의 정치상황이 복잡다단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을 단순한 정치적 권력자가 아니라 매우 존경받는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백제나 고구려 같은 전형적인 정복군주가 아니라 종교적 지도력을 더 두드러지게 발휘하는 인물을 왕으로 추대하는 신라의 독특한 정치체제는 두고두고 살펴볼 구석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릉은 매우 정갈하게 잘 관리된 능원이고, 그 내부의 알영정이나 박씨 문중의 사당인 숭덕전을 둘러싼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이 매우 멋있는 곳이었습니다.

차량으로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나정을 지나쳐, 육부촌 촌장들에게 제사 지내는 육부전을 거쳐, 창림사지에 올랐습니다. 좁은 논둑길을 조심조심 들어가는데, 마침 경주박물관학교에서 답사를 나오신 분들을 맞닥뜨렸습니다. 거의 백 여명 규모로 서남산 답사를 나오신 듯 했습니다. 저희는 창림사지에 먼저 도착해서 멋진 서쪽 뷰를 감상하고, 경주의 삼층석탑이 왜 멋진 작품인지를 이야기하고, 석탑 아래 풀숲에 숨어있는 쌍거북 귀부도 살펴보았습니다. 창림사지는 경주에서 일몰뷰가 최고로 멋진 곳 중 하나로 꼽히지만, 관광객이 굳이 찾아오기는 힘든 곳이지요.

포석정에도 들렀습니다. 나정이나 오릉이 신라의 처음을 생각하는 곳이라면, 포석정은 신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경애왕이 여기서 분별없이 잔치를 벌이며 흥청망청 놀다가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고 신라도 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아마도 그건 신라를 폄훼하기 위해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시기가 날이 추운 11월이었고, 이 인근 지역은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촌각을 다투는 시점에 남산의 신에게 나라의 안위를 빌기 위해 제사를 드리러 간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점심식사 성공
아침에 실패한 용산회식당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번호표를 받아둔 것이 있었고, 나중에 오면 웨이팅에 반영해주겠다고 약속을 받아두었던 터라 재도전을 했습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되면서 영업은 이미 마감되었다고 표시를 올려놓은 상황이었고 웨이팅 리스트에 오른 손님까지만 받기로 되어 있는 상태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드디어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 대체 산 밑에서, 아침부터, 횟밥을, 이렇게 오래 기다려서 먹을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회의감은 즉각적인 만족감으로 바뀌었고, ‘이 집 횟밥 잘하네, 초장 맛있네’로 바뀌었습니다. 동선이 좀 바뀌긴 했지만, 큰 무리없이 일정을 진행했고, 아침부터 기다렸던 횟밥을 점심으로나마 먹을 수 있었으니 실패없이 여행을 한 셈입니다.

만족스런 점심식사 후에 오릉 인근의 사립 갤러리 ‘플레이스 C’에서 음료를 마시며 전체 일정을 리뷰했습니다.
‘주말의 경주는 엄청나게 붐비는데, 정말 희안하게도 한산하게 여행을 할 수 있어서 편안하고 여유로왔다. 찾아간 식당마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계속 많이 먹어서 살이 찌겠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기로 한다. LP바의 경험이며, 기타 연주해 주신 분 등 로컬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들 만나서 어울릴 줄 몰랐다, 기대 이상이다. 여행 멤버들 서로 세심하게 챙겨줘서 너무 고마웠다. 좋은 사람들 만나는 것이 복인데, 이번 여행 참으로 좋았다.’
돌아 보니, 이번 여행은 [월간 낭만경주]를 시작하는 첫 여행이었기에 더더욱 경주의 지인 네트워크가 총동원되어 손님을 환대해주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식당, 숙소, 카페들이 제가 익히 아는 검증된 곳이었고, 주인장들과도 친분이 있었기에 자기 손님 맞는 것처럼 세심하게 챙겨주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아 두어야, 이럴 때 두루 도움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여행을 빛내주신 지역의 파트너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행을 마치고, 한 분이 소감을 보내주셨는데, 여러모로 고마운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매달 새로운 내용으로 [월간 낭만경주]를 들고 나타나겠습니다. 꾸준히 소식을 듣고 싶은 분들은 카톡에서 ‘해리하우스’를 검색하셔서, 카카오 채널을 구독해주시고, 오픈채팅방에도 가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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