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 연대기’ 성황리에 마치다

  • 5대째 도공 집안의 장인이 50년간 만들어온 대표 작품들 출품
  • ‘신라의 불기술’로 탁월한 청자 작품 제작에 성공
  • 한국 도자 연대기를 한눈에 조명하고, 경주를 ‘한국 도자문화의 본향’으로

2025년 5월 20일(화)에 시작된 전시회는 첫날 개회식에서부터 주목을 끌었다. 해겸 김해익 선생의 작품을 백 여 점이나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점에서 그간 그의 작업을 어렴풋이 전해 들었던 이들에게는 직접 눈으로 보고 평가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1.

전시회의 주제 ‘한국 도자 연대기’는 매우 야심찬 것으로, 도자 연대기를 연출한다는 것, 그것도 한 작가의 작품으로 전 시대의 작품을 담아내겠다는 것은 언뜻 보면 무모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도자역사의 전개 양상에 비추어 도자사 전체를 담아내려면 중국 아니면 한국 정도에서나 가능한 기획일 것이고 (일본은 주요한 발전을 임진왜란 이후로 본다면 도자사 전체를 담아낼 자산이 충분치 않다), 어느 쪽이 되어도 결국 ‘천하제일’이란 평가를 받았던 고려청자의 재현이 가능하냐에서 성패가 갈릴 일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 도자 연대기’란 주제는 도자사 전체를 교육적으로 풀어내보자는 소박한 기획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어디에서도 손 대기 힘든 도자역사의 전면 재현에 도전해 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기획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전시회가 어느 쪽에 더 부합했는지는 관람객들의 평가에 맡긴다. 다만, 우리는 이 기획이 우리를 이끄는대로 최대한 멀리까지 가 볼 작정이다.

2.

전체 전시는 ‘토기’, ‘청자’, ‘분청’, ‘백자’로 나누었고, 마지막에 ‘다완’을 별도로 모아두었다. 총 100여점이 넘는 수량이 출품되었는데, 이 정도의 수량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지역내 소장가들의 도움으로 약간의 중국 도자기와 현대 청자들이 비교 전시되었다.

전시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포인트는, 첫째 신라의 경질토기(1,000도 이상에서 소성)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럽게 재가 녹아서 생기는 ‘자연유’ 현상과 이런 잿물을 유약으로 활용한 ‘잿물유약 토기’, 고온 가마 작업 중 산소와의 접촉 수준에 따라 붉은 색에서 녹색까지 다양하게 색깔이 발현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초기에 전시한 것이었다. 특히 신라시대에 녹유도자기의 등장은 이후 고려시대에 청자가 나오는데 필수적인 ‘고온환원소성’이 이미 기술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포인트는 그런 신라시대 이래의 불기술인 ‘고온환원소성’을 재현하고자 50여년간 노력한 해겸 선생의 가마에서 탄생한 청자 재현품의 다양한 성취를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초벌작업을 마친 작품을 10여 미터에 이르는 통가마에 넣고 21일간 장작불을 땐다. 이런 방식의 가마 작업은 전무후무한 것인데, 이런 긴 시간 동안 축열된 가마에서 생산된 도자기들은 고려시대 청자의 빛깔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다. 현대 청자가 대체로 유약으로 색을 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에 반해 해겸의 청자는 태토 자체가 청자의 색깔로 구워질 때까지 까다로운 불조절을 해낸 결과물로 고려시대의 빛깔이 오롯이 도는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

분청은 ‘분장청자’의 줄임말로 쓰이는데, 고려시대 전성기를 지나면서 순청자나 상감청자를 가능하게 했던 가마기술과 공력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면서 태토의 종류, 문양의 종류도 달라지고, 도자기 표면에 다양하게 분장을 하면서 기술적으로 좀더 수월한 제작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자가 가마의 온도와 산소와의 노출 정도에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매우 까다로웠던 반면, 분청에서부터는 제작 환경의 제약이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훨씬 서민적인 문양과 거친 질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이후 백자로 이어지게 되는 다양한 채색과 문양도 시도되었다.

4.

백자는 해겸 선생의 주력 분야는 아니지만, 종종 크고 작은 달항아리 등을 선보였다. 그의 달항아리는 색이나 질감에서 새로운 실험보다는 모든 장식적인 것을 지워버리고 백자 자체만 남기는 고전적인 미를 제대로 담아내는 데에 더 주력한 듯하다.

전시장 출구 부분에는 다완을 전시해 놓고, 한편에는 사전 예약을 받아 해겸 다기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 마침 부안에서 이번 전시회에 맞춰 야생차를 채취해서 정성들여 만든 자연차를 제공해주어서 해겸의 다기에 걸맞는 한국차를 맛볼 수 있었다.

5.

이번 전시 기간은 마침 해겸 선생의 상반기 가마작업 시기와 겹쳤다. 전시 기간 중 두 번의 토요일에는 사전 예약을 받아서 해겸도요 투어를 진행하였다. 첫번째는 초벌 가마 작업 기간이었고, 두번째는 재벌가마 기간이었다. 자칫 긴장 수위가 높아지기 쉬운 시기였지만, 해겸 선생은 방문객들을 따뜻이 맞아주었다. 참가자들은 작업장과 가마를 보고, 전시장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여러가지 궁금한 내용을 묻고 대화를 나누었다.

6.

이번 전시회는 해겸 김해익 선생이 평생 만들어 온 작품들을 활용하여 한국 도자의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해겸의 작업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명료하게 자리매김하는 기회였다. 그간 두문불출하며 청자 재현에 고집스럽게 매진해 온 해겸은 이 전시회를 통해 신라시대 경주지역에서 일찍부터 발달해 온 경질토기, 자연유 토기, 녹유 도자기가 이후 고려시대에 청자를 구원내는 원천기술로 작용했음을 결과물로 입증하고자 했다. 많은 관람객들이 도자기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안목이 생겼다고 호평을 남겼다.

경주지역과 도자기를 연결하는 것이 언뜻 보면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시된 작품을 보고, 기획자의 해설을 들으면서 경주야말로 ‘한국 도자문화의 본향’이란 표현이 제대로 들어맞는 곳이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과거의 역사적 자산이 경주만큼 풍성하게 있는 곳이 없다. 신라시대의 토기는 박물관에서 이미 풍부하게 볼 수 있다. 고려청자의 세계적 위상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의외로 최고 수준의 작품은 수량이 많지 않다 보니 대대적인 대중의 주목을 받기에는 아직은 숙제가 많다.

다행히 이번 전시회 기간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순회 전시로 ‘상형청자전’이 경주를 찾아주어서 도자기 전반과 청자에 대한 관심을 적지 않게 환기시킨 점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해겸은 그 청자를 동시대에 제대로 재현해 내고 있으니 청자를 골동품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풀어낼 역량을 경주가 갖고 있는 셈이다. 분청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거친 질감은 수많은 작가들의 현대적 해석으로 새로운 중흥기를 예견하고 있다. 백자는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경주지역에도 좋은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도자 역사도 재해석을 해볼 수 있고, 거기에 담긴 도자문화의 맥락을 풀어볼 자산이 많이 확보되어 있는 셈이다.

앞으로 해겸의 작품과 작업을 중심으로 경주와 도자기를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예정이다. 그것이 전시가 될지, 출판이 될지, 경주도자기의 브랜드화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경주의 오래된 자원과 역사가 꿈틀하기 시작했으니,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에 걸맞는 반향을 꼭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

해리/ 해리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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