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시작은 쪽샘살롱 공간을 활용해서 책모임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하자는 것과 다른 책모임과의 차별성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마침 쪽샘살롱 주방을 맡아주던 후배 박성훈은 철학책 전문 번역가였으니, 철학책을 읽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때마침 그가 작업을 해봤던 편집자 박동수가 펴낸 <철학책 독서모임>(민음사, )으로 길잡이를 삼으면 딱 좋겠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저자 박동수가 공교롭게도 경주 출신이란 점은 추가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저자 초청 특강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결국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대신 두어 번 저자가 경주 고향집을 다녀가는 길에 쪽샘살롱에서 만나 와인을 마신 정도가 전부였다.
2023년 상반기에 그렇게 책모임을 시작했다.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가 막막했으므로, 포스터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독서모임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서 단톡방이나 밴드에 모임 공지를 올렸다. 황리단 부근의 몇몇 카페에는 포스터 출력해서 비치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시립도서관에도 붙이고, 생각나는 곳에는 다 부탁을 했다. 철학책 번역가 박성훈의 후광에 힘입어 첫날에는 10여 명이 찾아와서 북적거렸으나, 이내 철학책이란 진입장벽이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는지 줄줄이 그만 두어서 그 첫 시즌에는 3명의 고정멤버로 모임을 유지했다. 숫자는 적었지만, 책을 읽어내는 사람을 하나씩 찾아가는 작업을 멀리 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책 독서모임>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 챕터마다 1권의 철학책을 두고 실제로 운영된 ‘철학책 독서모임'(주요한 출판사의 젊은 편집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에서 토론한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책 선정의 기준이 흥미로웠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출간된 철학책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이로써 어느 정도는 현재 한국의 지성사회를 반영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리처드 로티나 이사야 벌린 같은 이들의 책은 20세기에 나온 책이지만, 국내 번역이 지금 이루어졌으니 현재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철학서적 출판 경향을 꽤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인권과 생태주의에서 더 나아가 반려동물권, 숲 생태계, 사이보그 등을 다루는 책들을 그렇게 접하게 되었고, 그 논리가 무엇인지 곱씹어 볼 수 있었다.







한 주에 한 챕터씩 진도가 나갔는데, <철학책 독서모임>의 한 챕터는 분량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안되었지만, 그 챕터에서 다루는 책을 가능한 구해서 같이 보았다. 한 주에 한 권씩 읽어내기는 아무래도 무리였지만, 그래도 주요 논지를 원래 책을 빠르게 훑어보며 체크할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최근의 추세인 동물권 논의를 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요즘 한참 부각되고 있는 철학자 부르노 라튀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맥락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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