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박물관에서 본 ‘상형청자전’

경주 박물관에서 특별전시로 열린 <상형청자전>에 다녀왔다. 연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려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전시인데 마침 경주로 순회 전시가 온 것이다. 때마침 우리도 같은 기간에 <한국 도자 연대기> 전시회(2025.05.20-06.01)를 열기로 되어 있어서, 특히 같은 청자 작품들이 몇 점 비교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전시회 첫 날이 마침 5월 연휴의 시작 날이기도 해서 박물관을 찾은 가족 단위 입장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도예 작가인 해겸 선생과 도자 평론가 이용범 선생과 동행했으므로 전시된 작품들의 만듦새와 감상 포인트를 새겨보는 일이 훨씬 여유로웠다.

서울 전시를 다녀온 두 분의 평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서울에서의 전시에 비하면 규모로는 1/3 정도 수준이라고 하고, 청자의 세계 전반을 볼 수 있도록 배치되었던 다양한 청자들이 빠지면서 아쉬움이 있지만 눈길을 끌만한 좋은 작품 위주로 전시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 한다. 공간이 좀 좁은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그건 경주 박물관의 현실에서는 선택의 여지는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죽순모양 주전자와 정병. 두 분이 모두 최고로 꼽은 작품이다. 작품 전체가 매우 고르게 굽혔고 비색이 잘 발현되고 있으며, 잘 구운 청자 특유의 매우 얇은 유약면이 돋보였다. 이번에 나온 작품 중에는 최고급으로 간주될 만하다는 평이었다.

많이 기대하고 보러 간 작품은 국보인 어룡형주전자였다. 기형도 독특하고, 아우라가 대단하다. 오랜 세월을 견디다 보니 작품이 긁혀서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지만 잘 만든 작품이다. 꼬리 부분의 갈색은 세월의 풍화작용이 아니고 원래 처음 제작되었을 때부터 불의 영향이 균일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진품 청자를 보면 작품 전체가 고르게 제작된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보라고 해도 그 역사적 가치와는 별개로 개별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는 편차들이 꽤 존재한다.

이번에 우리가 올리는 전시에는 해겸 선생이 만든 어룡형 주전자가 출품된다. 전시 준비하는 과정에 여러 번 봐왔기 때문에 이번 상형청자전에서 가서는 꼭 이 작품의 원본을 찾아서 보고 싶었다. 실물을 보고 난 인상은 해겸 선생의 작품이 만만치 않게 잘 만들어졌구나 하는 확인이었다. 과거의 고려청자를 보고 현대의 해겸 작품을 견주어 본다면 매우 흥미로운 비교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상형청자 작품들 중 꽤 숫자가 많은 분야가 향로였다. 고려시대에 불교가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향로 뚜껑을 주로 동물 모양으로 만든 청자 작품이 사용되었다. 고려사람들은 향을 피울 때 청자를 사용하며 호사를 누렸구나 싶다. 오늘날에 과거의 향로에 비견할 용품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청자로 재현 혹은 창작하면 좋을 기물은 무엇이 있을까?

주전자 역시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주전자는 주로 과일이나 식물의 형태를 많이 본땄는데, 가끔은 거북이 모양의 귀룡 주전자나 어룡 모양으로 만든 독특한 형태가 나오고 있고, 사람 모양으로 제작된 것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주전자의 만듦새는 수준이 꽤 차이가 났다. 어떤 것은 유약이 뭉쳐있거나, 두터워 보이는 투박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정말 유약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얇고 고르게 구워진 작품도 있었다. 색깔도 은은한 비색에서 황색이 도는 작품들도 있었는데, 과거 청자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비추어 보면 이번 전시는 비색이 감도는 작품 위주로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상형청자 소품으로는 연적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크기가 작다 보니 단단하게 구워져서 비색을 잘 발현하는 작품이 여럿이었다. 올해 대구의 간송미술관 개관전에도 원숭이 모양 연적이 나와서 눈길을 끌었는데, 동물들의 모양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장 마지막 순서로 토기와 청자 재현품을 관람객이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하는 근엄한 전시가 아니라 거리감을 대폭 좁히는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다만, 가져다 놓은 현대 청자는 고려청자에 비해 색감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생경할 정도였는데, 이는 현대 청자가 과거 고려청자의 재현에 이르지 못하고 아예 다른 장르가 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5월 20일(화)부터 6월 1일(일)까지 경주 예술의전당에서는 해겸 김해익 선생의 도자기 전시회가 열린다. 그의 작품이 80점 넘게 전시되는 대형 전시이다. 청자 재현에 탁월성을 보이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가 이번 경주 박물관의 상형청자전을 통해 고려청자의 미감에 눈을 뜬 대중들과 만나 청자에 대한 대대적 관심이 촉발되었으면 좋겠다. 현대에 청자를 이런 수준으로 재현하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면 이는 정말 기분좋은 충격이 아니겠는가? 해겸의 작품 몇 점만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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