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의 [월간 낭만경주] 5월호 여행은 무려 ‘석굴암 투어’였다. 일 년에 단 하루, 석가탄신일에 석굴암 본존불이 있는 주실이 개방된다. 이번 여행은 석굴암을 들어가는 기회라면 특별한 여행을 만들어서 가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흥분하며 만들었다.
결과는? Breathtaking!
숨이 멎고 압도당하는 경험이었다. 그 1박 2일의 여행, 풀 코스 리뷰를 시작한다.
프리 코스
본 여행은 1박2일이지만, 경주를 한 번 다녀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오는 김에 하루 이틀 더 머물고 가려는 경우가 생긴다. 만약 해리하우스의 [월간 낭만경주]를 흥미롭게 읽어온 분들이 경주의 숨은 매력을 찾아 로컬로 딮 다이브(deep dive)를 하겠다고 요청을 해 온다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마다하지 않는다. 함께 투어를 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는 좋은 코스를 추천해주거나, 맛집을 소개해주곤 한다. 이번에도 세 분이 하루 전 미리 도착했기에, 일정을 추천해주었다. 그 중 시간이 맞는 분과 저녁시간+다음날 오전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경주에서 맛집을 찾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로컬의 느낌을 잘 살려보려면 ‘막걸리집’을 추천한다. 안주로 나오는 음식들의 퀄리티와 양이 어마무시하다. 어디인지는 안 알려드림. 이런 집들은 관광객이 검색해서 가는 집이 아니다. 손님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퀄리티 떨어지고, 분위기 바뀌는 것을 로컬에서는 싫어한다. 우리는 풍성한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LP바를 들러 멋진 음악을 즐겼다. 다음 날이 중요한 여행 시작인데, 무리하지는 말자면서도 많이 먹고, 잘 마셨다.

토요일 오전에도 일정이 하나 더 있었다. 경주 남산에서 ‘칠불암 오감체험’이란 이름으로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진행하는 행사였는데, [월간 낭만경주] 5월호 여행 코스를 같이 기획해서 여행상품으로 만들어낸 협력 여행사 ‘비아 경주(via Gyeongju)’의 박 대표께서 이 프로그램의 해설사이자 인도자 역할을 맡는 바람에 참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약 세 시간에 걸쳐 칠불암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에 오감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체험을 경험하게 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문화유산 활용프로그램이다. 칠불암에는 남산의 유일한 국보인 7개의 석불이 있다. 삼존불과 사방불인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 미적 구성이 빼어나다. 이슬비가 내리는 차분한 분위기 가운데 50명 규모의 인원이 칠불암을 왕복했다. 우리는 점심으로 준비된 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돌아왔다. 이제 오후부터 본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청을 만나고 쌍탑을 돌다
오후 2시에 속속 교촌으로 모여든 참가자들은 숙소에 간단히 짐을 풀고 바로 여행에 나섰다. 첫번째 들른 곳은 [월간 낭만경주]의 고정 오프닝 코스가 되고 있는 고청기념관이었다. 마침 연간 진행되는 문화행사 일정 중 경주의 대표적 화가인 최용대 화백의 분청사기 그림 전시회가 마지막 날이었다. 최용대 화백도 만나 그림 이야기를 듣고, 고청기념관도 둘러보고, 고청 고택에 앉아서 차를 한 잔 마시며 여행을 시작했다. 바로 인근의 인도풍 소품샵 젤라꾸티도 방문했다.


보리사의 미남 부처님을 만나러 갔다. 경주 남산의 동쪽면을 동남산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유독 특별한 불상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그 중 내일 새벽에 만날 석굴암 본존불과 매우 유사한 형태이고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부처상이 보리사에 있다. 불상의 항마촉지인 수인이며, 그외의 여러 조형적 특징과 상징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어서 서출지 인근의 동남산 쌍탑을 찾아갔다. 해설도 듣고, 탑돌이도 해보았다. 삼층석탑은 신라의 독특한 종교미학적 성취이다. 경주에서 삼층석탑만 찾아다니며 대표적 작품만 감상해도 하루로는 부족하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불교미술은 통일신라 시대에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준 이후로 다시는 그만한 수준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석불과 석탑에서 그렇다. 그런데, 경주에는 이런 작품들이 산과 들에 지천으로 있으니… 지금도 박물관이 아닌 노천 곳곳에서 이런 수준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교촌으로 복귀했다. 월정교, 월성, 경주 향교 등을 산책한 후에 최부자집 과객체험을 했다. 일반 관람이 끝난 이후에 별도로 진행된 과객체험은 최부자집의 역사와 고택의 특징을 들으며 교동법주를 맛보는 가운데 국악연주도 들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해산물과 막걸리를 곁들인 심야의 뒤풀이 시간을 통해 참가자들은 첫날 여행의 감상을 편안하게 풀어놓았다. 주말의 경주는 엄청나게 분주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다닌 코스는 관광객들의 전형적인 코스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에 불과 지척에 바쁘게 다니던 그룹 여행자들과는 달리 동선도 효율적이었고, 전혀 쫓기지 않았다. 지나가던 여행객들은 교촌 숙소의 낮은 담장 너머로 뒤풀이 모습을 보며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인가 궁금해 하기도 했다. 완벽하게 우리만의 일정과 시간을 훼방받지 않고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여행의 기획자로서 남 모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드디어 새벽 석굴암을 가다
새벽 5:30에 출발했다. 석가탄신일 하루 종일 개방이라고는 하지만 아침 이른 시간을 놓치면 석굴암 오르는 길에 차가 막혀 길에서만 여러 시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6시 좀 넘어서 석굴암 일주문이 열렸고, 주차장까지 길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은 석굴암까지 10분 남짓한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우리 팀은 12명, 거기에 경주 사는 분들 중 우리 일정과 함께 해설을 들으며 석굴암 참배를 하기로 한 이들이 9명이 더 있었다. 한꺼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서 석굴암 앞에 줄을 섰고, 차례가 올 때까지 천천히 나아갔다.

무선송수신기를 통해 석굴암 이야기를 계속 해설하고 있는 비아 경주의 박 대표는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약 10여 년간 석굴암을 매년 왔었는데,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다고 했다. 한 30분쯤 지났을 때, 드디어 차례가 왔다. 신발을 벗어서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들고 들어갔다. 늘 보던 유리벽 안쪽으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차례로 들어가서 시계방향으로 석굴암 내부를 돌고 있었다. 아, 이런 광경을 보게될 날이 오다니!
나는 여러 번 그 동안의 석굴암 관광이 매우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피력해왔다. 이 엄청난 문화예술적 자산을 유리벽 안에 가두어 두고 줄줄이 서서 잠시 보고 지나가는 식으로 관람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유물의 보호를 위한 조치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런 방식의 관람은 임기응변을 영구적으로 하겠다는 셈이다. 마치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 갔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공연장 안에는 들여보내지 않고, 평론가의 찬사를 음악 대신 읽도록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조각과 건축은 보아야 하고, 음악은 들어야 한다. 사진으로, 음반으로, 혹은 평론가나 작가들의 감상문을 읽는 것으로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현장감과 실재감이란 것이 있다. 드디어 오늘, 나는 석굴암을 친견한다. 나에게 이제부터의 석굴암은 어제까지의 석굴암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유리벽 안쪽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공기가 훅 몰려왔다. 아마 살짝 차가왔을텐데, 사람들의 흥분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묘한 활기가 흘렀다. 사각형의 전실(前室) 좌우를 먼저 살폈다. 불교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팔부신중 상이 새겨져 있다. 석굴암의 조각 중에서 그 위상이 가장 낮은 존재들인데, 조각 기법도 약간 거친 느낌이 있고 일부는 석재의 색깔이 약간 차이가 있었다. 통로 입구 좌우로 버티고 있는 금강역사는 자세히 보려고 노력을 했다. 생동감 있는 표정과 역동적인 근육질의 자세는 볼수록 매력적이다. 통로 안쪽 벽면에는 사천왕상이 좌우로 2기씩 조각되어 있어서 주실로 이르는 경로를 수호한다. 석굴암은 그 자체로 사찰의 양식을 완벽하게 다 갖추고 있다. 사천왕상을 둘러보며 몇 걸음 걷자, 바로 돔형의 주실(主室)로 들어섰다.

아, 너무 가까왔다. 본존불의 바로 앞까지 들어왔는데, 대좌 위 3.4m 높이의 불상을 올려다 보니 아래서부터 총 5m가 넘는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압도감이 덮쳐왔다. 숨을 훅 들이쉬지 않을 도리가 없다. Breathtaking이란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그간 경주에서 보아왔던 어떤 불상보다 더 자연스런 표정과 압도적 규모, 손가락 하나 하나 자연스럽지만 부족한 구석 없는 완벽한 묘사에 감탄을 했다.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바라보는데 팔의 늘어뜨린 모습도 자연스러웠고, 나는 특히 뒷 모습이 좋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박물관의 백률사 청동약사여래상도 그랬고, 지금 이곳 석굴암에서도 부처님 뒷 모습이 왜 그리 눈에 들어왔을까. 뒷 모습이 더 넉넉하고 충만해 보였다.

본존불 바로 뒤편에는 석굴암의 또 다른 걸작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박물관 신라예술관 로비에 재현품이 있어 아쉬운대로 감상할 수는 있었는데, 그 진품을 친견하고 있는 것이다. 주실은 범천(梵天, 브라흐마), 제석천(帝釋天, 인드라), 문수보살, 보현보살, 10대 제자로 둘러싸여 있다. 그 위로는 10개의 감실이 있는데, 그 중 2개는 비어있다. 저 감실 중 하나에 유마거사 상이 있을텐데, 어느 것인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보살이 아니지만 깨달음에 이른 일반신도로 알려진 유마거사 상이 거기에 있는 이유로 재가보살 사상의 영향을 꼽는다. 기독교로 치면 ‘만인제사장’ 사상과 다름이 없다. 석굴암이 단순히 귀족불교로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천장을 올려다 보니 석재에 돌못을 박아 돔형태로 전체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 우주 전체를 묘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석가모니께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서 우주의 중심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선언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함축된 구조이다.


석굴암을 나오니 동해바다가 바로 보인다. 본존불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동해. 왜구들의 침탈 때문에 문무대왕릉도 동해 바다에 조성되었고, 부처님들도 다 나라를 지키는 뜻에서 동쪽을 향해 앉아있다는 해설을 들었다. 나는 그것이 한편 그럴 듯하기는 하나, 호국불교적 해석을 넘어 태양이 뜨는 동쪽을 곧 진리가 떠오르는 곳이라 여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에서 ‘달마가 서쪽에서 오는 이유’가 곧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일 것이고, 그것은 진리가 서역 혹은 서쪽의 경전과 가르침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나아가는 용맹정진의 도에서 발견될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석굴암 바로 아래 암자에서 아침공양을 했다. 이렇게 절밥을 얻어먹었다. 비빔밥과 물김치로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석굴암 일정에 함께 한 이들이 준비해 온 차를 얻어마셨다. 잘 숙성된 귀한 보이차를 맛보았다. 경내를 더 둘러본 이후에 석굴암을 나와 불국사를 향했다. 버스 타고 내려가는 길에 보니 석굴암 오르는 길이 온통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새벽 일찍 움직인 덕에 우리는 길에 묶여 있지 않을 수 있었다.

불국사가 위대한 이유
석가탄신일에 불국사를 방문한다는 것은 무모한 계획일 수 있다. 허나 석굴암 참배와 아침공양까지 마치고도 9시 30분이었으니, 아직은 붐비기 전이었다. 불국사 일주문을 통과하면 처음 만나는 것이 해탈교이다. 원래 불국사의 주 통로가 이쪽이 아니었으니 나중에 조성한 것인데, 이번 여행에서 흥미로운 해설을 들었다. 다리와 계단은 다르다는 것. 다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 즉 차원의 이동과 전환을 의미한다. 국보인 청운교와 백운교가 돌계단이지만 다리라고 불리는 이유는 속세에서 불국토로 들어가는 질적 전환을 매개하기 때문이라는 것. 반면 계단은 하나씩 오를 때마다 점층적으로 깨우치고 알아가는 단계가 높아지는 것, 즉 연속적 변화 과정을 의미한다고 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국사에는 총 6개의 국보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석가탑, 다보탑, 비로전에 있는 금동비로자나불, 극락전에 있는 금동아미타여래불이다. 불국사의 목조 건축물들은 모두 복원한 것으로 오래된 것은 조선시대이고, 그보다 훨씬 후대의 것도 많다. 반면 석조유물은 대부분 신라시대의 것인데, 이를 염두에 두고 눈여겨 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많이 보인다. 석재를 다루는 신라인들의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놀랄 지경이다. 석재 중 가장 강도가 높은 화강암을 주재료로 이렇게 목재 다루듯 정교한 작업을 해놓았나 싶을 정도다. 그것만 알아볼 수 있어도 불국사를 보는 눈이 열 배는 높아지고, 신라의 예술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운교와 백운교 옆의 석조 축대를 보면 난간 아래부분까지 쌓아올린 석재의 모양에 따라 가로 석재를 가공한 ‘그렝이 기법’을 볼 수 있다. 지상의 울퉁불퉁함과 천상의 반듯함이 만나는 접점은 자연석의 굴곡을 그대로 따라 파서 빈틈없이 맞물리게 만들어 놓았다. 다보탑과 석가탑이란 극과 극으로 이질적인 스타일의 쌍탑을 대웅전 앞마당에 세우는 방식으로 파격을 시도한 기획도 놀랍다. 불국사는 참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정점에 도달한 불교와 그 예술적 표현이 총망라된 국가적 기획의 산물이란 점을 새삼 일깨워 준다.
사찰음식과 전통차를 마시며
점심식사는 인근의 사찰음식 전문점에서 했다. 경주에 늘 아쉬웠던 것이 사찰음식 혹은 비건음식이었다. 여러가지 아쉬움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좋은 선택이었다 생각한다. 여행 참가자들 모두에게 비아 경주 박 대표는 수공예 작품과 그림엽서를 선물했다. 이번 여행을 같이 준비하면서 박 대표의 에너지와 세심함에 크게 배웠다.
새벽 석굴암 여행을 함께 했던 아사가차관에서 감사하게도 차를 대접해주었다. 보문단지 순환도로변에 있는 차관을 방문했는데, 2층의 차실을 가득 채운 다기의 아름다움에 눈이 호사를 누렸다. 김이정 대표께서 직접 두 종류의 차를 내려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차에 문외한이나 초보자라도 이렇게 차를 접하게 되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다. 경주에서 이런 정도의 내공으로 차문화를 알리고, 향유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참가자들은 아마 앞으로 경주를 다시 방문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에 차를 마시러 들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여행은 경관과 역사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만큼이나 사람과의 만남이 매력 요소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경주의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컬의 고수들을 여럿 만났다. 고청기념관에서 만난 고청 윤경렬 선생의 일대기, 거기서 전시회를 열고 있었던 국전 작가 서양화가 최용대 화백, 유퀴즈에도 출연해 최부자집의 유산을 소개했던 최부자아카데미의 최창호 이사, 매년 경주에서 세계차문화대회를 열고 있는 아사가차관의 김이정 대표 등은 일반적인 관광으로 왔다면 만날 기회가 거의 없거나, 굳이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월간 낭만경주]는 우연인듯 필연인듯, 로컬로 깊숙이 들어와 경주의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있다. 사람이 매력적인 여행을 더 많이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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