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겸 청자에 대한 소고”(2024)

신라는 4~5세기에 이르면 600~1,000℃의 낮은 화도에서 산화 불때기로 구워낸 저화도 토기 단계를 넘어 1,000℃ 이상의 고화도 환원 불때기를 통해 밝은 회청색의 경질토기를 생산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경질토기 제작에 사용된 고화도 환원 불때기 기술은, 회유토기의 유약기술과 함께 청자를 만드는 핵심기술이 된다. 해겸은 통가마에서 장작으로 10일이상 불을 때는 고화도 환원 불때기를 통해 밝은 회청색을 띤 신라 경질토기를 재현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부친과 함께 녹유 토기를 연구하고 만들면서 유약과 불때기의 관계를 더욱 심도있게 배우게 된다. 제대로 된 환원 불때기에서 녹유 특유의 윤기나는 녹색이 발현되고 다른 경우에는 누런색이나 갈색으로 발색되는 현상이 경질 토기 위에 재가 녹으면서 나타나는 현상과 동일함을 확인하면서 온전한 환원 소성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해겸은 환원 불때기 기술을 연구하여 경질토기를 재현한데 이어 갈유 녹유 등 회유(灰釉)토기를 재현함으로써 청자 재현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신라의 경질토기와 통일신라의 회유토기 재현에 성공한 이후 경질토기의 태토를 익히는 기술과 회유토기의 유약기술을 바탕으로 청자 재현에 도전하게 되는데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친 끝에 17일간의 고화도 환원 불때기를 통해 2007년 마침내 비색청자 재현에 성공하게 된다. 해겸은 녹유토기의 태토(胎土)에서 점토 비중을 줄이고 고령토의 양을 조절하는 등 청자 태토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으며, 유약(釉藥)의 경우도 잿물 양을 줄이고 장석·석회석 등을 비중을 조절하는 과정을 통해 비색 청자를 재현할수 있는 최적의 태토와 유약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고려 비색청자를 구워낸 강진의 가마를 연구하여 제작한 통가마에서 17일~21일 동안 장작으로 불을 때는 고화도 환원 불때기 기술을 완성함으로써 마침내 최상급 고려청자에서 보여지는 얇은 유막(釉膜)과 투명한 유색(釉色)을 지닌 비색 청자를 구워내는데 성공했다.

청자의 비색(翡色)은 온전한 환원 불때기가 이루어져야 완성되는 최상의 하이테크 기술로 당대 국제사회에서 천하제일로 평가받았던 고려 비색청자 재현은 전통의 계승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해겸은 비색청자 재현에 이어 상감청자 재현에도 성공함으로써 선대로부터 이어져온 고려청자 재현이라는 오랜 숙원을 마침내 이루게 된다. 해겸은 최상급 고려 상감청자에서 보여지는 얇은 유막(釉膜)과 투명한 유색(釉色)으로 상감문양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운 상감 청자를 구워내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접하는 청자는 해방이후 만들어진 현대 청자와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볼수 있는 고려 청자로 나눌 수 있다. 고려 청자와 현대 청자는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찬찬히 살펴보게 되면 많은 점에서 다르다. 박물관·미술관 등에 전시중인 고려청자와 도요지의 도편(陶片)들을 보면 제작기술의 수준, 태토나 유약 등도 색상과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지만 같은(혹은 유사한) 태토와 유약을 사용했더라도 불때기에 따라 녹청색에서 담녹색·암녹색·회녹색·청회색·녹회색·녹황색·담황색·녹갈색 등에 이르는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으며 비색 청자는 드물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지금 이천·광주·여주·강진·부안 등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현대 청자는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을 계승하기 위해 우리 도예가들이 해방이후 수십년간의 노력을 통해 이룩한 성과로 청자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또한 다기(茶器)·식기(食器) 등으로 실생활에 사용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 청자는 예술적·기술적 완성도에 있어 고려청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고려 비색청자의 맑고 깊은 맛과 품격에 못 미치고 있어 비색(翡色) 청자 재현은 여전히 많은 도예가들에게 꿈이자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현대 청자는 대부분 가스 가마로 하루만에 구워내며 일부에서는 장작 가마로 3~7일 정도에 걸쳐 구워내기도 하는데 고려 청자와는 태토·유약이 다를뿐 아니라 특히 가장 중요한 불때기 기술이 달라 고려 청자에 비해 유막(釉膜)이 두껍고 유색(釉色)이 불투명해 다른 종류의 도자기, 즉 현대청자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현대에 들어 국내·외의 많은 도예가들이 청자 재현에 도전하였으나 고려 비색(翡色)청자 재현에 실패하였으며, 이에 대안으로 두터운 유약으로 청색을 띤 현대 청자를 제작하였는데, 예술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고려 비색 청자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의 사례에서 보듯 고려 청자는 마치 유약을 바르지 않은 듯 흑백상감이 희고 검게 뚜렷하게 보이는 반면 현대 청자는 두터운 코발트 유약으로 청자색을 내기 때문에 유색이 탁한데다 흑백상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고려청자와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수 있다.

고려청자도 현대청자와 마찬가지로 유약이 두텁게 시유된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현대청자와 달리 유색이 투명하고 마치 유약층(유막)이 없는 듯 얇게 보이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해겸의 21일간 불때기에서 보듯 고려청자는 오랜 불때기를 통해 유약내의 불순물을 모두 태워버리기 때문이며 둘째는 태토가 충분하게 익혀진 상태에서 두터운 유약이 내부에서부터 녹아내려 태토의 미세한 틈사이로 스며들어가기 때문이다.

얇고 투명한 유색에서 비롯된 맑은 비색(翡色)은 깊고 차분한 느낌을 주며, 상감(象嵌)이나 음각·양각 등의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철화(鐵畵)나 퇴화(堆花) 등의 기법도 유색이 맑고 투명했기 때문에 선명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 청자가 우아하고 품격높은 조형미로 천하제일이라는 평가를 받게된 것은 맑고 투명한 비색(翡色)을 구현할수 있는 최고 수준의 환원 불때기 기술 덕분이라 할 것이다.

해겸은 고려청자가 신라의 경질토기에서 회유(灰釉)토기(잿물유약토기)를 거쳐 녹청자·청자로 발전해간 사실에 착안하여 환원소성 불때기로 신라의 회색 경질토기와 회유토기 재현 불때기 기술을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2007년 비색(翡色)청자 재현에 성공하게 된다. 우리 선조들이 수백년에 걸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고화도 환원(還元) 불때기 과정을 해겸은 도공 가문에서 축적한 불때기 기술과 더불어 50년간 평생을 바친 노력을 통해, 토기에서 시작하여 갈유(褐釉) → 녹유(綠釉) → 녹청자(綠靑瓷) → 청자(靑瓷)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 비색청자의 핵심 기술인 환원 불때기와 태토·유약에 숨겨진 비법(秘法)을 터득, 마침내 비색(翡色)청자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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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사단법인 한국도자문화협회 상임위원 등 역임. 역대 최대 규모 전시회인 <한중 도자명인 100인전>(2009) 기획총괄 등 미술 및 도자기 전시 기획과 자문, 평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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